감상 11

진짜 가치에 대한 믿음 만들기

NFT를 네트워크 상에서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전자적 형태의 저작물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러한 이해가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에서는 '스마트 계약'이라고 표현했는데, 적확한 표현이다. NFT는 전자적 형태의 저작물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그 저작물에 대한 거래 내역을 기술적인 방식으로 위조나 변경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기록하는 증권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NFT가 가져오는 경제적 가치의 본질적 요소는 위와 같은 저작물의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이 NFT에 포함된 거래 내역에 신뢰성을 부여한다. 아무리 값비싼 보석이라도 보증서 없이 거래될 수 없듯, 크고 아름다운 부동산이라도 등기이전 없이 거래될 수 없듯, 전자적 형태에 보..

감상/책 2022.08.22

인간다움, 우리는 무엇을 믿게 될까

'인간다움'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 그 이전의 시대에는 영혼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마음이라고 여겨지는 시절도, 언어나 이성이라고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스스로 결단할 수 있음에서 오는 심오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믿고들 있는 것 같다. 유발 하라리가 언급하듯 그러한 신화는 이미 신기루처럼 무너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간이 왜 인간다운지 정의내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정의의 최전선에 있는 자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가장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농경시대의 성직자들, 이데올로기 시대의 혁명가들, 그리고 지금은 '텍스트'로 만들어진 사회 여타의 알고리즘을 해석하는 프로페셔널들이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그러한 정의는 끊임 없이 무너지고 재구성된다. 유발..

감상/책 2022.08.22

선거방송 리뷰 – 볼 거리 또는 들을 거리: 3사 + 종편 리뷰

미디어 덕후로서, 로스쿨 1학년 중간고사 철이었던 2016년 지방선거를 제외하고 항상 여러 방송사의 선거방송을 함께 틀어놓고 여러 분석을 해 보는 편이다. 이번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에서는 KBS의 ‘내 삶을 바꾸는 선택 – 2020 총선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이 낮 5시 45분부터 새벽 2시까지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MBC의 ‘선택 2020’과 SBS의 ‘2020 국민의 선택’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 선거방송의 역사 – 2010년대부터 본격화된 경쟁의 구도 사실 짧은 민주화 역사만큼이나 선거방송에 경쟁이 더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언론통폐합 이전부터 개표방송은 KBS와 MBC가 동시방송하는 것이 관례였고, 이는 6월 민주항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다 19..

감상/미디어 2022.08.12

Triangulation

여러 시사프로그램은 사후적으로 챙겨보려고 하는데, 오늘 이 기획을 보면서, 작지만 내게 인사이트를 주는 영역이 퍽 참신한 것 같아 잊을까 하여 아무 말이나 막 쓰고 일단 공유 한다(이 프로그램, 이 기획의 완결성에 대한 관점은 완전히 별개로 한다. 그저 문득 밤에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쓰기 위한 글감 정도라고 생각해주길.). 국내 이슈에 대해서는 보수-진보 내지 찬성-반대와 같이 양 관점을 고루 제시하는 틀은 많이 나와 있는데, 사실 해외 이슈에 대해 양 관점을 나누어 제시하는 국내 방송은 드문 것 같다. 외국 이슈에 대한 관점이 특정한 주류 외신이나 국내 언론사들의 관점에 취사선택 되는 경우들이 많은데, 어제 KBS 더 라이브에서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책을 놓고 트럼프 찬성 측과 반대 측 토론을 붙였는..

감상/미디어 2022.08.12

가장 잘 갖추어진 자가 반드시 일등이 되지는 않는다: 천상지희의 노래와 3월 9일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엄마 생신을 맞아 강원도 집에 간밤에만 잠시 내려왔는데, 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이 오늘은 천상지희 노래들과 무대로 이끌었다. 예전 학창시절의 공간에서 그때 노래들을 들으니 그때의 여러 기억들이 떠오른다. 소리는 역시 기억을 부르는 것 같다. 내일 아침이면 이불킥할 추억에 취해 간밤 중 잡설. 브금은 타이틀곡이라 별로 안 유명하고 빡! 멋있는 노래도 아니지만 라이브를 좋아하는 ‘여우’라는 노래. 20년차 슴덕인 나로서, 가장 잘 갖추어진(명확히 하면, 춤, 노래, 외모와 같은 실력이 거의 삼각형 꼭지점에 있는) 걸그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천상지희를 꼽을 것이다. 모두 내가 여전히 덕질하고 있는 걸그룹으로서 진심으로 애정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S.E.S는 멤버 ..

감상/미디어 2022.08.12

부장뱅크, 담백하게 그리고 가볍게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시작은 그리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2017년 9월부터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의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언론인들은 김장겸 사장과 고대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 여파로 현직 연출진들이 전부 손을 놓아버렸다. 이에 부장급들이 뮤직뱅크와 같은 방송을 연출하게 되었는데, 아이돌 팬덤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간 화려함만 따라 산만하던 화면이, 담백하고 깔끔한 연출로 눈도 마음도 편해졌다는 것. 이 시절을 '부장뱅크'라고 부른다. 그간 화려한 무대와 정신 없는 카메라로 겉은 빛났지만 정작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빛나야 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당기고, 전체적인 태를 보고 ..

감상/미디어 2022.08.12

MBC 뉴스데스크 개편에 대한 첫 인상

2017년 언젠가 페이스북 오늘 자로 문화방송 뉴스 개편이 있었다. 개편의 폭은 광범위했다. 뉴스데스크, 뉴스투데이 등 시간대별 메인뉴스 앵커부터, 뉴스 아이덴티티, 포맷과 구성 역시 크게 변했다. ​ 그간 문화방송의 경영진이 교체되고, 기대했던 바에 비해 뉴스의 구성이나 진행 방식이 매우 올드했고, 내용 자체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황금기 시절 문화방송 뉴스의 부활을 기대했던 많은 이들에게는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었다. ​ 뉴스룸 밖에서 싸워온 해직자들이 뉴스를 맡아 바꾸려고 해도, 이미 변화한 시대에 비해 다소 올드해 보이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뉴스를 오랫동안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하는 과정이 퍽 길었으리라 생각한다. 문화방송 내부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보도국 인력 수급이 경쟁사에 비..

감상/미디어 2022.08.12

유재석이 Netflix에 나오는 시대에 대한 아무말 대잔치

2019. 1. 14. 페이스북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우리의 경쟁자는 공중파나 JTBC가 아니다. 지금 자기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이다." ​ CJ E&M에 PD로 입사한 오랜 친구에게 방송국 요즘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가장 첫 번째 말이었다. 나영석 PD의 말로 기억한다(아닐 지도 모른다. 그 정도 급이 되는 그 방송사의 PD의 말이었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미 방송계의 주류가 가지고 있는 위기감이 훅 들어오는 것 같아 내게는 퍽 충격적이었다. ​ 젊은이들이 TV를 보지 않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공중파 드라마는 pooq으로, iptv로 골라본다는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는 본방사수라는 말을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

감상/미디어 2022.08.12

MBC 뉴스데스크 개편에 대한 첫 인상의 패치 (최근의 몇 가지 업데이트와 소고)

2019. 2. 페이스북 지난 2018년 7월, 문화방송 뉴스 개편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매우 마이너한 이야기라 좋아요는 몇 개 없긴 했지만 그런대로 대내외적으로 이 쪽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좋은 반응을 얻어, 언젠가 한번 업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2022.08.12 - [감상/미디어] - MBC 뉴스데스크 개편에 대한 첫 인상 지난 뉴스 개편의 실패 ​ 지난 2018년 7월의 문화방송의 뉴스 개편은, 대략 뉴스 아이덴티티 개선을 통한 이미지 제고, 연성화된 아이템을 통한 젊은 층 공략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1탄 글에서는 이런 선택이 표면적으로는 변화된 것 같은 모양새를 보일 수는 있지만 언론으로서의 신뢰와 깊이 없이는 이미 돌아선 시청자들을 사로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감상/미디어 2022.08.12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있을까

김영하 - 여행의 이유 "Life is a journey, not a destination"이라는 글귀를 치앙마이 그림 가게에서 본 적이 있다. 인생은 목적지가 아니라, 하나의 여행이라는 것. 심플한 말이다. ​ 처음에 몇년간,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마치 삶이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 끊임 없이 나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순간 왔다 한 순간 떠나는 것이라고. 그러니 잠깐에 노여워하지 말고, 상처받지 말고, 그저 너의 길을 마냥 걸어가라는 취지이겠거니 했다. ​ 그러나 '여행의 이유'를 읽어보면, 약간은 뉘앙스의 차이가 느껴진다. 특히 이주와 여행의 관계는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는 비유가 퍽 재미있었다. 오히려 무질서하고, 통제력을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저 ..

감상/책 202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