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 그 이전의 시대에는 영혼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마음이라고 여겨지는 시절도, 언어나 이성이라고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스스로 결단할 수 있음에서 오는 심오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믿고들 있는 것 같다. 유발 하라리가 언급하듯 그러한 신화는 이미 신기루처럼 무너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간이 왜 인간다운지 정의내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정의의 최전선에 있는 자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가장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농경시대의 성직자들, 이데올로기 시대의 혁명가들, 그리고 지금은 '텍스트'로 만들어진 사회 여타의 알고리즘을 해석하는 프로페셔널들이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그러한 정의는 끊임 없이 무너지고 재구성된다. 유발 하라리는 이를 그물망이 생기고 풀어지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어쩌면 우리가 내리는 인간다움에 대한 정의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까지 진보와 성장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이끌었다. 더 이상 절대자가 주는 틀 내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근대'가 준 약속에 터잡아 미래를 그려간다. 그러나 역사 속 수많은 그물망들이 풀어진 것처럼, 이러한 믿음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자유의지도, 개개인의 합이 세상에 다채로운 가치를 줄 수 있다는 사람중심의 생각들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사람들보다 사회를 더 잘아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우리가 무엇을 '인간다움'으로 믿게 될지,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튜링 테스트에서와 같이, 알 수 없는 무지 속에서 결국 확실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앞으로의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스스로의 욕망까지도 설계할 수 있는 세상이 오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인간답다'고 믿고 살아가게 될까. 그러나 과거의 가치, 편협한 레퍼런스로 미래를 가둬둔다면, 풀어질 그물망을 붙잡고 사라진 과거의 수많은 자들과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전염병을 고치기 위해 몸에 역청을 바르는 사람들과 같이 풀어진 그물망만 붙잡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지금 인간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과 같이 유연하게 협력하면서 때로는 부딪히고 하나되면서 인간은 또 한 걸음 나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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