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 숨
뜻대로 되지 않는 때가 있다. 왜 나한테만 원망한다. 실패하고, 이별하고, 아파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잘 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바꿀 수 없다. '세월의 문'을 발견해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설사 돌아간다고 해도,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삶도, 관계도 흐름이기 때문이지는 않을까 싶다. 아무리 움켜쥐려고 해도 결국은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알처럼 말이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순간 왔다 그새 사라지는 공기와도 같다. 아무리 숨을 깊게 들이 마시려고 해도, 결국 그만큼 내뱉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다. 텅 빈 세상에서 한 없이 흩어져 나가 결국은 나직한 쉿 소리를 흘리며 평형상태에 접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실패하고, 이별하고, 아파하는 삶이 소중한 이유는 그런 세상 속에서 이토록 충만한 생명이 나타나, 또 다른 존재와 마주하며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 때문이다. 우리 삶, 우리 관계가 인공지능으로 만든 데이터들 보다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그 어떤 물리적 존재여서도, 인간이어서도 아니고 그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도 아니다. 텅 빈 진공의 시간에서 매 순간 하나의 압축과 파동을 만들어내는 발버둥. 그것이 삶도, 관계도 가치있게 만드는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함께 해 나가면서, 하나하나 자기자신만의 압축과 파동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차갑고 냉혹한 세계는 물리적인 무언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스스로의 세상, 누군가와 만들어 나가는 한 공간에서 끊임 없이 부딪히는 그 떨림이 사라지는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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