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미디어

부장뱅크, 담백하게 그리고 가볍게

SGSN 2022. 8. 12. 17:38

 

시작은 그리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2017년 9월부터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의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언론인들은 김장겸 사장과 고대영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 여파로 현직 연출진들이 전부 손을 놓아버렸다. 이에 부장급들이 뮤직뱅크와 같은 방송을 연출하게 되었는데, 아이돌 팬덤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간 화려함만 따라 산만하던 화면이, 담백하고 깔끔한 연출로 눈도 마음도 편해졌다는 것. 이 시절을 '부장뱅크'라고 부른다.

 

그간 화려한 무대와 정신 없는 카메라로 겉은 빛났지만 정작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빛나야 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당기고, 전체적인 태를 보고 싶을 때는 풀샷으로. 무대장치도 담백하게 필요한 부분들 중심으로, 모든 컷 하나 하나에 맥락이 느껴지는 연출까지.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리버풀 FC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의 말이 부장뱅크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워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니 말이다.

 

누리꾼들의 대체적인 반응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해도가 높고 보고 싶은 장면을 딱 맞춰 담았다는 의견, 어느 회사를 가도 그분이 부장님이 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고, "아, 그럼 부장님이 해보세요!!! 의 결과물.avi"이라는 댓글에는 나도 피식 웃기도 했다.

 

실은 부장뱅크는 언론사 총파업이 있었던 2017년부터 이미 K-POP 고인물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영상이다. 물론 오랜만에 부장뱅크 영상 속 무대가 너무 아름다워 함께 공유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멍하게 무대들을 살피다보니 "어린왕자"를 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자서전에 쓴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In anything at all, perfection is finally attained not when there is no longer anything to add, but when there is no longer anything to take away, when a body has been stripped down to its nakedness."

 

무엇이든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몸을 드러내는 그 때에 완벽에 이르게 된다는 그의 말.

 

한국방송공사 부장님들의 테크닉이 현직들보다 낫다고는 단정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기술, 감각, 그리고 트랜드를 접하고 그것을 접목시키는 능력은 우리 나이 또래의 빠릿한 현직들이 훨 나을 거라고 생각된다. 물론 방송 콘텐츠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고 반짝이는 청춘들을 뽑아두고 밤낮 없이 편집하면서 열심히 갈아만든다는 사실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테크닉만 있다고 다는 아닌 것 같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뚫어 보는 인사이트가 핵심이다. 무언가를 더 얹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 때에 완벽해진다는 생텍쥐페리의 말이 언론사 총파업이라는 다소 이례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난 것이 바로 부장뱅크인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를 알고 보여줄 것만 정확하게 뽑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부장님들이 K-POP 아이돌 판에 있는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원래 다 알고있었다거나, 그들의 안무나 뮤직비디오를 줄줄이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고개를 끄덕인 댓글이 하나 있었는데 "원래 무대나 안무를 모르면서도 이렇게 편안히 무대를 감상하고 넘어가는 것 자체가 퀄리티 높은 영상이 아니었나 싶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포인트에 맞추어 기본에 충실하니, 모두가 해피한 것이다. 파트에 맞는 멤버를 찍고, 풀샷을 적절히 이용하고, 포인트 부분에서는 구도와 무빙으로 정곡을 찌르는 음악방송의 기본말이다. 기본기에 충실하면 핵심을 찌를 수 있고, 핵심을 찌르면 긴 말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조급하면 이것도 붙이고 저것도 더하고 누더기가 되고 만다. 그간 음악방송에서 정신없이 돌려대는 영상, 이상한 곳만 찍어대는 발카메라, 무대에 돈 많이 썼다고 자랑하며 폭죽놀이만 찍어대는 연말 시상식은 수도 없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이렇게 구구절절 떠들고 나니 지금 나를 보게된다. 요즘 이제는 덜어낼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퍽 많이 듣고 있다. 업무에서든, 일이든, 삶이든. 가만히 생각히보니 흡사 나도 여느 또래의 방송국 현직들처럼 이것저것 꾸역꾸역 넣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모자라 보이는 것을 채우기 위해, 이것 저것 억지로 꾸겨 넣으려는 듯. 때문에 화면을 폭죽놀이로 채우고, 거대한 무대만 찍으려는 연말 시상식 무대처럼 자원은 있는 그대로 소비하면서 그만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까스로 다 가지려고 하면, 이도저도 아닌 발카메라만 찍을 뿐이다.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어디를 더욱 드러내야 할지 생각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부장뱅크에 여유가 느껴지는 이유는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어서니까. 최대한 덜어내고, 담백하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본질을 지키면서 내 앞에 펼쳐지는 누군가의 퍼포먼스를 하나 하나 담아두어야 될 것 같다.

 

** 위 무대 중에서 최고는 맨 앞에 태민 Move인 듯하다.